사회

칼럼과 자서전 쓰기를 권하며 / 미목 이효상 작가칼럼

이테리우스 2022. 2. 22. 14:09

글을 쓴다는 것은?

 

글쓰기를 좋아한다. 어릴 적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자연과 함께 하고 자연을 노래하며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시인을 바랬던 것 같다. 간혹 왜 나는 글을 쓸까?”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글쓰기를 통해서 나는 무엇을 얻는가, 혹은 얻으려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혜와 행복을 소통하고, 문화와 역사를 논하기 위한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 나의 글은 다산(茶山) 정신을 기초로 문화와 지역, 사회와 민족의 미래를 위한 조언이 주류를 이룬다. 의식의 흐름과 생각, 문화적 현상과 방향, 지역과 사회의 흐름까지도 포함하여 글을 쓰려 해왔다. 칼럼으론 분량이 길고, 학술적으론 어렵지 않다. 대중적이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편한 글을 쓰고자 노력했다. 잡지사 집필위원을 비롯하여 최소 20여년 다양한 언론사 칼럼을 쓰면서 세운 원칙이다.

먼저 하나 마나 한 말은 쓰지 말자. 쓰나 마나 한 글로 독자를 엮지 말자는 것이다. 좋은 칼럼은 분명히 시시비비를 논하는 글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도 좋고, 저것도 괜찮다 는 식은 경계했다. 솔직하게 칼럼은 반대편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논쟁적인 내용을 담겨야 한다고 보지만 꼭 한편을 들어서 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물론 명쾌한 논리와 합리적 근거, 적절한 예시, 충분한 반론 등이 담겨야 한다. 날만 세우면 횡포를 넘어 폭력과 마찬가지다. 다툼과 욕설을 부르는 글이 아닌 정확한 진단과 대안에 따스한 온기와 향기가 묻어나는 칼럼을 쓰고 싶다.

최소 하루에 세군데 이상의 신문 칼럼을 매일 읽는다. . . 동의 글은 대충 논조가 정해져 있다. 온갖 문장으로 치장해도 결론은 같다. 한겨레와 경향은 늘 좌가 옳다. 양극단의 한 면만 지나치게 강조해서 균형을 상실하면 늘 하는 잔소리가 된다. 다수의 다른 신문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깊이어 다양성이 부족하다. 불편부당의 중도를 표방하는 글은 대체로 심심한 것인가. 사실 어느 한쪽만 잘못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양쪽 다 독자의 수준은 프리미어리그(premierleague)급인데 논객들의 실력은 편 가른 조기축구회 수준이라면 지나친 자학일까. 그래서 이런 시나 칼럼을 쓰기가 참 어렵다. 글로 감동을 준다는 건 내 수준에선 솔찍히 쉽지 않다.

 

얼마 전 남양주시의 지인(知人)인 주광덕 전의원이 생애 최초 자서전을 냈다.주광덕의 진심, 길을 만든다를 사서 읽었는데 밤 새워 읽고 두 번 세 번 다시 읽었다. 한 마디로 구구절절한 인생고백서다. 솔직해서 그런지 재밋다. 정치인에게 자서전은 원래 쉽지 않다. 작가들이 절반은 써주는 거의 무협지 정도로 알려져 왔다. 주로 작가들의 대행업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가 직접 쓴 순도 99%의 자전적 고백서였다.

글은 곧 그 사람이라는 말처럼 읽다보면 촉촉이 젖은 문장과 그의 솔직하고 맑고 고운 숨결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지인모임에서 자주 만나는 그는 더 없이 정겹고 따스한 사람이었다. 눈물도 많다. 이 정겨움. 따스함이 한 문장 한 문장 글로 다가왔다. 그의 눈물 많음이 거꾸로 그로 하여금 배부르고 등 따스한 자리에 혼자 있게 하지 않았다. 사람을 좋아하고, 약속한 것은 손해가 나고, 다 떠나가도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정치계의 소위 의리파(?)에 속한다. 그래서 오늘의 그가 있는 것 같다.

남양주 퇴계원에서 태어나 맨손, 맨발로 시작한 인생이라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참으로 어렵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 춘천고를 다니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꿈의 지도를 개척해서 그려나갔는데, 그것이 마침내 법조인에서 정치인, 국회의원으로 성공했다.

책을 읽어보면, 그는 원석을 다듬어 보석이 된 케이스다. 맨발, 맨손의 청춘기를 통해 그동안 얼마나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는지 짐작하게 된다. 그 성실성을 누가 따라갈 수 있을까 싶다. 그의 인생은 아직까지도 맨손, 맨발로 걷는 인생이다. 지금도 정치인이기에 정치자금법에 따라 누구를 대접할 수 없는 맨손이고, 매주 산행을 맨발로 하기에 맨발의 인생이다.

맨손으로 일군 그의 꿈과 비전이 좋다. 맨손으로 시작한 인생! 천상병 시인이 말한 소풍같은 인생을 추구 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겹고 따스하고 눈물이 느껴진다. 그냥 알던 주광덕, 예전에 몰랐던 주광덕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많은 것을 새롭게 알았다. 애잔한 가족사와 어머님 사랑하는 이야기에선 가슴이 먹먹하기까지 했다.

그는 맨발로 땅을 밟으면서 우울증과 불면의 밤을 극복하고 힐링을 경험했다. 맨발로 걸으면 꿀잠을 자게 되고 불안, 초조, 과민현상 등으로부터 진정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다. 그래서 자살하려는 사람을 초대해 매주 함께 맨발 산행을 하며 위로하고 새 삶을 살도록 한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자신이 치유된 사람이 타자를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주광덕 의원의 북 콘서트에 초대받아 대담을 나누는 이효상 원장

북 콘서트에 초대 받아

 

주의원이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 및 북 콘서트에 대담자로 초청해 주어 흔쾌히 응했다. 그 이유는 원칙을 중시하는 법조인에서 타협과 협상을 하는 정치인으로 변신했는데 해본 결과와 일반인들이 정치인들에게 가장 궁금한 것일 수 있는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가장 기초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독자들을 대신하여 묻고 싶었다. 북 콘서트는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정권교체를 원하는 민심의 파도를 보는 것 같았다. 또 소통과 경청, 공감 잘하는 정치인 주광덕의 저력을 느끼게 했다.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공정이다. 세대, 성별, 일자리, 교육, 부동산 등 공정이라는 단어가 빠지는 분야가 없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공정의 개념이 달라지기에,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매듭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기대를 모았던 기존의 정권이나 자치단체장들이 이 매듭을 풀지 못했다. 해결 방법 중 하나로 제시됐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청년백수시대는 취준생까지 분노하게 만들었고, 매듭은 더 꼬여만 간다. 금년의 대선이나 지방선거의 시대정신도 공정이다. 모든 주자들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시민들에게 구체적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좋은 정치인들이 많이 나와 좋은 정치로 다시 공정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정치는 결코 높은 곳에 있지 않다. 정치는 가장 낮은 곳에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숙고를 하는 것은 정치의 시작이자 발로이며 이는 대의정치의 기본이다. 주의원도 오래도록 좋은 정치인으로 성장해 갔으면 한다. 정치인은 많으나 좋은 정치인은 얼마 안된다. 이는 역사가 평가를 하기 때문이다. 민생현장에서 눈물을 닦아온 그 실력으로 남양주와 경기도민에게 사랑받아온 그가 시민에게 희망을 꿈꾸게 하는 역할을 기대하며, 사회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조화시켜 소통과 화합의 장을 만들어가는 역할자로서, 민생의 안정화를 위해 지역이기주의 갈등과 양극화를 극복하는 지도력을 발휘했으면 한다.

 

칼럼과 자서전 쓰기

칼럼은 주로 이슈에 따라 접근하여 매주 단편적으로 쓰게 되지만, 자서전은 한 사람의 삶을 깊게 기술하는 장점이 있다. 우리는 종종 옛 사람 일생을 반추하고, 다른 사람 삶을 살핀다. 사표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가다듬기도 한다. 자서전은 보다 자유롭게 자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저자와 화자, 주인공이 동일하다. 아무런 제약도 없지만, 삶의 솔직한 서술이 기본 조건이다. 자기 외의 등장인물과 역사현장이 있기 때문에 문학적, 예술적 기능보다 진실성이 중시된다. 자서전에선 책 전반에서 강조한, 그리고 에필로그(epilogue)에서 확언한 최종 목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엇을 위해 걷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라는 바로 여기서 인생철학을 엿볼 수 있다.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세상에서 제일 좋은 풍경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이라는 노래가 있다. 코로나를 극복하고 자유 대한민국의 일상을 회복하는 그 제자리를 찾는 일에 아름다운 봉사가 필요하다. 동행이 필요하다. 오늘도 걷는다. 지금 겨울 한파가 매섭다. 이상화 시인이 말했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이라는 아름다운 곡으로 책을 마무리 하고 있다.

북 콘서트의 한 장면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자서전, 특별한 사람만 쓰는 것은 아니다. 생을 정리하며 마지막에 한번만 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남은 인생을 더욱 다채롭고 풍요로우며,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자서전 쓰기를 권장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어쨌든 매주 한편 이상 칼럼을 쓰고 있다. 잘 쓰고 못쓰는지는 나중에 생각해 볼 문제다. 글은 꾸준히 써야 한다. 앞으로 10년만 더 쓰고 퇴직하는 날 책을 내고, 나도 북콘서트나 열어 볼까 싶다. 이런 인문학이란? 인생의 맛과 멋의 소통이다. 그런 점에서 책이란 무엇일까. 책 출판이 가지는 의미는. 쓰고, 찍고, 만들고 나누고 사고(4go)는 인문학을 즐기고 창조하는 모든 시민들에게 좋은 도전과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