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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의 '병든서울'을 미목 이효상 작가가 논하다

이테리우스 2016. 6. 10. 08:30

오장환 의 병든 서울

오장환의 병든서울을 미목 이효상 작가가 논하다

 

오장환 시인, 1918년 충청북도 보은에서 태어난 그는 휘문고등보통학교 다닐 때 정지용 시인에게서 시를 배웠으며, 학교 교지 '휘문''아침' '화염' 등을 발표하였고, 1933<조선문학>'목욕간'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는 초기에 1930년대 시지낭만,시인부락,자오선등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당시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백석, 이용학과 더불어 1930년 후반 대표시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1937년에 성벽, 1939년에헌사, 해방후 1946년에병든 서울, 나 사는 곳(1947) 등의 시집을 내며 당대 천재시인이라 불렸다. 그의 작품은 병든서울’ , ‘나사는 곳’ ‘헌사등은 당대 최고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의 작품중 세번째 시집으로 병든 서울1946년 정음사에서 간행되었으며, 서문인 <머리에>와 함께 19편의 시작품을 수록 모두 815광복 이후에 쓰여졌다. 일기(日記)형식으로 제작일자를 명시하고 수록시편을 제작순에 따라 배열, '815의 노래', '연합군입성(聯合軍入城) 환영의 노래', '이름도 모르는 누이에게', '원씨(媛氏)에게', '()든 서울', '어둔 밤의 노래', '지도자(指導者)', '입원실(入院室)에서', '', '가거라 벗이어!', '연안(延安)에서 오는 동무 심()에게', '이 세월(歲月)도 헛되이', '공청(共靑)으로 가는 길', '너는 보았느냐', '강도(强盜)에게 주는 시()',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 '나의 길',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 등 수록되어 있다.

이태준의 소설 <해방 전후>, 이용악의 시 <오월에의 노래>와 더불어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에서 선정한 해방문학상의 후보작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병든 서울>은 조정래의 역사소설 태백산맥에 발췌되었으며, 1982년 군산에서 발생한 간첩 사건인 오송회 사건은 고교 교사들이 병든 서울을 돌려 읽은 것이 발단이 된 것이었다.

오장환 시인은 일제 말기에 붓을 꺾지 않으면서도 친일의 길을 걷지 않은 몇 안 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동하게 되는데 이 시는 해방 후의 부정적 현실 속에서 새 시대에 대한 전망과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 신장병으로 인해 8.15 해방을 병상에서 맞은 그의 광복의 감격과 어수선한 해방 정국에서의 울분과 좌절,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격한 감정 속에서도 현실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해방된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하고 형상화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오장환의 병든서울을 미목 이효상 작가가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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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의 병든서울을 미목 이효상 작가가 논하다
오장환의 병든서울을 미목 이효상 작가가 논하다

              

병든 서울

                        오장환

 

8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蕩兒:방탕한 사나이)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루 아침 자고 깨니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큰 거리에는,

네거리에는, 누가 있느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다.

,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를 부르며

이것도 하루 아침의 가벼운 흥분이라면……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언제나 눈물 없이 지날 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 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그렇다. 병든 서울아,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모두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아 다정한 서울아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

나라 없는 원통함에

에이, 나라 없는 우리들 청춘의 반항은 이러한 것이었다.

반항이여! 반항이여! 이 얼마나 눈물나게 신명나는 일이냐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나는 조급히 병원 문에서 뛰어 나온다

포장친 음식점, 다 썩은 구루마(짐수레. 달구지)에 차려 놓은 술장수

사뭇 돼지 구융(‘구유의 사투리)같이 늘어선

끝끝내 더러운 거릴지라도

, 나의 뼈와 살은 이곳에서 굵어졌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무리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몹쓸종자)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그리고 나는 외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815, 915,

아니, 삼백예순 날

나는 죽기가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울겠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내가

시골 구석에서 자식 땜에 아주 상해 버린 홀어머니만을 위하여

우는 줄 아느냐.

아니다, 아니다. 나는 보고 싶으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아

그때는 맑게 개인 하늘에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구름처럼 떠도는 것을……

아름다운 서울, 사모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서 자빠져 죽는 날,

그곳은 넓은 하늘과 푸른 솔밭이나 잔디 한 뼘도 없는

너의 가장 번화한 거리

종로의 뒷골목 썩은 냄새 나는 선술집 문턱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 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 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쓸개

내 눈깔을 뽑아 버리랴, 내 쓸개를 잡아 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상아탑 창간호, 1945.12)

 

오장환의 병든서울을 미목 이효상 작가가 논하다